칸트는 1724년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과 수학·자연과학을 공부했고, 가정교사 생활을 거쳐 대학 강단으로 돌아왔다. 1755년부터 강의했고 1770년 논리학과 형이상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시간에 맞춘 산책이라는 유명한 이미지보다 긴 강의 생활이 중요하다. 그는 이미 완성된 체계를 반복해서 가르친 사람이 아니라, 자연과학의 성취와 형이상학의 논쟁을 함께 공부하며 자신의 문제를 바꾸어 간 연구자였다.
그의 관심에는 우주의 형성과 운동, 인간의 앎, 도덕과 종교가 함께 있었다. 이를 모두 같은 질문으로 취급하면 비판철학의 변화가 사라진다. 어떤 사건의 자연적 원인을 설명하는 일과 어떤 행동이 정당한지 묻는 일은 다른 근거를 요구한다. 이 시리즈도 먼저 지식의 조건을 다룬 뒤 행위의 원칙으로 넘어간다. 전기를 철학의 증명으로 사용하지 않고, 왜 서로 다른 종류의 질문이 한 저자의 작업 안에 모였는지 살피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인식의 조건을 묻는 칸트의 전환은 개인의 생각이 사실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니다. 경험적 주장을 검증하는 일과 경험 자체가 가능한 조건을 묻는 일을 구별하며 시작한다.
1781년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되었고 1787년 제2판이 나왔다. 칸트가 말하는 비판은 단순한 반박이나 회의가 아니라 이성이 자신의 권한을 검토하는 작업이다.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묻는 동시에, 경험의 범위를 넘어서는 주장이 지식의 자격을 갖는지 살핀다. 첫 세 강의는 이 기획의 입구를 다루며, 책 전체를 요약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1785년 『윤리형이상학 정초』와 1788년 『실천이성비판』은 도덕적 의무와 자유를 탐구한다. 1790년 『판단력비판』은 미와 자연의 목적성이라는 또 다른 영역을 다룬다. 이번 과정의 도덕 강의는 주로 『정초』에 집중한다. 저작의 제목과 순서를 밝혀 두면 서로 다른 책의 문장을 하나의 편리한 명언으로 합치지 않고 논증의 역할을 따라 읽을 수 있다.
도덕적 행위는 겉모양과 성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정초』의 흐름을 따라 선의지, 준칙, 보편법칙, 인간성의 관계를 한 단계씩 읽는다.
1784년 계몽에 관한 글과 1795년 『영구평화론』에서 칸트는 공개적으로 논증할 자유와 국가 사이의 권리 관계를 묻는다. 평화는 좋은 통치자의 친절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생각하는 용기도 홀로 모든 지식을 얻으라는 뜻으로 끝나지 않는다. 출판과 교육, 법과 제도라는 조건이 이성의 사용을 둘러싼다.
그러나 보편성을 주장한 철학자를 오늘의 평등을 이미 완성한 인물로 그릴 수는 없다. 그의 저술에는 성별과 인종에 관한 차별적 견해도 있으며, 시대적 배경이 이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 과정은 원전이 제시하는 존엄의 논증을 읽되 저자의 모든 판단을 모범으로 승인하지 않는다. 1804년에 끝난 한 사람의 생애와 그 이후에도 검토되는 주장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이 독자의 일이다.
자율은 타인을 배제하는 독립이 아니라 함께 인정할 원칙의 문제로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사적인 선의를 넘어 공개 논증과 지속할 평화의 조건을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