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대중·종합 · 1/3

사랑·대중·종합 · 1강 · 9분 읽기

좋아하는 감정보다 오래가는 이웃 사랑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웃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허용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일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웃으로 대하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의무라면 마음에도 없는 친절을 연기하라는 뜻일까요? 『사랑의 역사』는 이 물음에 감정을 더 오래 유지하는 요령으로 답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누구를 향해야 하고 무엇에 근거해야 하는지를 바꿔 묻습니다. 그 요구를 따라가면 친한 사람들끼리 충분히 다정하다는 자기 평가만으로는 끝낼 수 없는 문제가 생깁니다.
비 내린 코펜하겐 거리를 혼자 걷는 키르케고르를 재구성한 장면
군중 속에서 단독자로 선택한다는 문제를 붙잡았던 산책과 집필의 도시를 역사적 분위기에 맞춰 재구성했습니다.
실존 철학 · 생애와 자료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 앞에 서기

『사랑의 역사』는 1847년 키르케고르가 실명으로 출간한 책입니다. 원제 Kjerlighedens Gjerninger는 사랑이 행하는 일들을 가리킵니다. 부제는 담화 형식의 기독교적 숙고라고 밝힙니다. 서문은 사랑 자체를 완전히 정의하거나 모든 사랑의 행위를 목록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몇 가지 행위를 숙고하며 독자가 자기 삶을 읽도록 하는 저술입니다.

직전의 『공포와 전율』은 필명 저자가 아브라함의 신앙과 보편적 윤리 사이의 역설을 붙잡았습니다. 이 책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중심에 둡니다. 두 책을 한 줄의 체계로 합치면 한쪽의 긴장이 사라집니다. 여기서는 신과의 관계가 어떻게 눈앞의 사람에게 향하는 사랑을 요구하는지, 실명 저술의 논증을 따라 읽습니다.

제1부 II A는 계명의 두 표현을 나누어 살핍니다. 자기 자신처럼이라는 말은 자기 사랑을 모두 없애는 명령과 다릅니다. 이웃 사랑과 올바른 자기 사랑을 함께 묻는 기준입니다. 이어지는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사랑과 의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통념에 맞섭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관계를 넘어, 좋아하는 마음이 흔들릴 때도 사랑의 요구가 남는다고 주장합니다.

원탁의 빈 참여석과 열린 출구를 남겨 둔 채 서로 다른 필요와 거리를 듣는 사람들
개념을 장면으로 읽기

거리에서 스쳐 가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사랑할 만한 이웃인지 먼저 고르려는 시선을 돌아봅니다. 이 편집 장면의 낯선 이들도 직업이나 친밀함에 앞서 이웃인가 하는 질문이 이 회차의 출발입니다.

핵심 논증

선호하는 사람에서 누구나 이웃인 관계로

키르케고르는 연인들이 지금의 사랑을 근거로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는 장면을 검토합니다. 그 맹세의 강렬함도 결국 변할 수 있는 사랑 자체에 기대고 있다면 미래를 보증하지 못합니다. 원문은 사랑에 기대어 영원을 약속하는 것과 영원에 근거해 사랑을 약속하는 것을 뒤집어 놓습니다. 의무가 사랑을 변화와 절망에서 자유롭게 한다는 역설은 이 영원한 근거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자유는 원할 때 관계를 바꾸는 선택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호의와 자신의 기분이 사랑의 존재 여부를 전적으로 결정하지 않게 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를 감정을 무시하고 정해진 서비스를 계속하라는 규칙으로 줄일 수는 없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사랑의 종교적 근거이며, 행동 몇 개를 반복했다고 그 사랑을 다 이루었다는 판정은 아닙니다.

II B가 묻는 이웃은 집이 가까운 사람이나 나와 잘 맞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누구든 다른 인간이라는 점에서 이웃입니다. 이웃 사랑의 평등은 그 대상이 내게 흥미롭거나 유익한지 먼저 심사하지 않습니다. 친구를 찾을 때의 취향, 교양이 비슷한 사람끼리의 친밀함, 높은 지위에 대한 동경은 모두 사람을 고르는 이유일 수 있지만 이웃이라는 자격의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원문은 우정과 연애를 매우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또 하나의 자기로 대하는 관계에는 자기 사랑이 확장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크게 희생한다 해도 그 결속이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자기들의 세계를 지킬 수 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시인이 찬양하는 선호의 사랑을 우상 숭배라고까지 부릅니다. 이를 친밀한 관계는 대체로 좋다는 온건한 조언으로 순화하면 비판의 세기가 달라집니다.

그렇다고 친구와 연인을 버리고 아무와도 가까워지지 말라는 결론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질문은 그 사람 안에서도 이웃을 사랑하느냐입니다. 저자는 선호가 두 사람 사이를 매개하는 관계와 신이 매개하는 이웃 사랑을 구분합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돌려주는 사람이어서만 사랑하는지, 내 선호의 바깥에서도 신 앞의 한 사람으로 대하는지가 달라집니다. 이 근거를 단순히 공정한 성격이라고 바꾸면 신앙적 논증의 일부를 빼게 됩니다.

이웃에는 원수도 들어갑니다. 친구인가 적인가 하는 차이 역시 인간이 신 앞에서 갖는 평등을 지우지 못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요구는 상대가 먼저 좋은 태도를 보이면 배려하겠다는 조건을 흔듭니다. 동시에 독자에게 가장 어려운 반론을 남깁니다. 상대가 잘못을 계속할 때 사랑은 어떤 행동이어야 할까요? 한 사람을 이웃에서 제외하지 않는다는 말만으로 구체적인 관계의 거리까지 모두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제1부 IV는 우리가 보는 사람들을 사랑할 의무를 다룹니다. 보이지 않는 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보이는 형제를 미워한다는 모순을 『요한1서』 4장 20절로 묻습니다. 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쓸 마음과 자원을 아껴 둔다는 해명은 여기서 통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신이 자신만의 몫을 따로 요구하는 존재인 것처럼 그리지 않습니다. 신에게 향한다고 말한 사랑이 실제 사람에게 어떻게 이르는지를 묻습니다.

같은 장은 이상적인 사랑의 대상을 찾아다니며 현실의 사람을 계속 탈락시키는 태도를 비판합니다. 부족함이 보일 때마다 더 나은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 있겠다고 물러서면, 사랑에 관한 높은 기준이 사랑하지 않을 구실이 됩니다. 그러나 저자는 잘못된 곳에서의 무른 관대함을 칭찬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합니다. 관계를 떠날 명분만 조사하는 태도와 함께 결함을 극복하려는 태도를 구별합니다.

그 논의의 강한 사례는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입니다. 저자는 피해를 입은 쪽이 자기 사건의 패배만 보는 데서, 잘못한 친구가 처한 위험을 보는 데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리스도라는 본보기가 제시하는 사랑의 요구는 가볍지 않습니다. 독자는 그 요구의 의미를 이해하면서도 모든 사람이 모든 관계에서 같은 친밀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에는 반대할 수 있습니다.

논증을 한눈에

선호하는 사람과 누구나 이웃인 관계

  1. 의무와 근거

    기분과 상대의 호의가 바뀌어도 사랑의 요구가 남는다는 논증은 영원한 근거에 기대고 있다.

  2. 선호와 이웃

    나와 닮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는 기준과, 신 앞에서 누구나 이웃이라는 평등은 다르다.

  3. 보이는 사람

    이상적인 대상을 기다리기보다 실제 사람을 사랑하라는 요구는 결함과 신분의 차이 앞에서도 이어진다.

종교적 평등이 사회적 차이의 폐지를 뜻하지 않는다는 원전의 한계와, 사랑·친밀함·잘못의 수습을 나누는 현대적 응답이 함께 남는다.

오독하지 않기

내면의 평등이 지우지 못하는 차이와 거리

이 책의 평등에는 사회적 한계도 있습니다. II C는 높은 신분과 낮은 신분을 연극의 의상처럼 보며 그 안의 공통된 인간을 보라고 합니다. 동시에 기독교가 그 차이 자체를 폐지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씁니다. 이웃을 동등하게 본다는 관점과 불평등한 제도를 바꾸는 과제 사이의 간격입니다. 내면에서 존중한다는 말만으로 실제 지위와 자원의 차이가 낳는 문제까지 해결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만남과 용서를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이 글에서 필요한 현대적 구분은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 잘못을 바로잡는 일, 친밀한 관계를 다시 맺는 일을 나누는 것입니다. 원문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거리는 쉽게 화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 상처 입은 사람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대신 판정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장면

좋아하지 않는 이웃의 부탁을 받을 때

가상의 은서는 공동주택에서 이웃 정호와 여러 번 다툰 적이 있습니다. 정호가 복도에 물건을 오래 쌓아 두어 지나가기 불편했고, 은서의 요청에도 치우는 일이 늦었습니다. 정호가 이사를 준비하며 새집에 들어가기 전 하루 동안 상자 두 개를 맡아 줄 수 있는지 묻자 은서는 거절하고 싶습니다. 다른 이웃의 부탁이었다면 먼저 상자 크기부터 물었을 것 같습니다.

은서는 『사랑의 역사』를 읽으며 자기가 친절한 사람이라고 믿은 근거를 돌아봅니다. 대체로 자신에게 다정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들에게 친절했습니다. 그것도 소중한 관계이지만, 거기에서 느낀 다정함을 이웃 사랑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달라집니다. 정호가 불편한 사람이라는 기억이 그를 어떤 배려에서도 제외할 이유가 되는지 묻게 됩니다.

그러나 책을 읽었다고 정호와의 문제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은서의 집에 여유 공간이 있는지, 언제 찾아갈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는 상자 두 개를 정해진 시간까지 보관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정호는 시간을 늘려 달라고 하지만 은서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 범위를 말하는 일이 원문이 요구한 사랑을 완성했다는 증거도, 사랑에 실패했다는 증거도 되지는 않습니다.

정호가 상자를 찾으러 온 날 은서는 그동안 불편했던 복도 문제를 꺼냅니다. 정호는 이사까지 하는 마당에 지난 일을 또 말하느냐며 말을 끊습니다. 은서는 도움을 주었으니 이번에는 자신의 말을 들어 줄 줄 알았다는 기대를 발견합니다. 앞선 선택 회차의 두 마음이 여기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도움에 대한 대가로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마음과, 불편을 제대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겹칩니다.

은서는 다음 부탁까지 받아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정호를 좋아하게 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친구였다면 했을 도움을 이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상상하지 않았다는 차이는 남습니다.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일과 가까운 관계를 원한다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정호가 자신을 고마운 이웃으로 기억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후 은서는 누군가에게 이 일을 말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너그러웠는지 강조하고 싶은 마음을 느낍니다. 이웃 사랑을 자기 인품의 증명으로 쓰면 다시 자신이 이야기의 중심이 됩니다. 그는 정호의 태도를 좋게 꾸며 말하지 않으면서도 그 일을 선한 자신과 나쁜 이웃의 대비로 끝낼 수 있는지 망설입니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를 묻던 책은 사랑하는 자신을 어떻게 말하는가라는 문제까지 남깁니다.

구분해서 읽기

사실, 개념, 오늘의 적용.

  1. 01

    이웃은 내 선호에 맞아 선택된 사람이 아니라 신 앞에서 동등한 다른 인간입니다. 원문은 우정과 연애 안에서도 그 이웃을 사랑하는지를 물으며 선호의 사랑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2. 02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과 잘못을 묵인하는 것, 친밀함을 회복하는 것은 다릅니다. 원문의 무조건적인 요구와 실제 관계의 한계를 검토할 때 이 차이를 숨기지 않습니다.

출처와 읽기 원칙

어디에서 확인했는가.

이 글은 철학자가 오늘의 독자에게 직접 말한 것처럼 대사를 만들지 않습니다. 남겨진 저작과 역사적 자료를 먼저 읽고 현대적 적용을 별도 단계로 구성했습니다.

아래 권·절을 중심으로 읽고 현대적 해석을 덧붙였습니다. 각 링크의 원문·번역 언어와 판본은 항목에 표시했습니다.

독립 참고 문헌: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øren Kierkegaard ↗
쇠렌 키르케고르 인생 철학 · 전체 12편 목차